[이상한 자동차들 ②] 대지를 달리는 항해선을 꿈꿨던 콜럼‘버스’
[이상한 자동차들 ②] 대지를 달리는 항해선을 꿈꿨던 콜럼‘버스’
  • 오토커넥트
  • 승인 2019.09.30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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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V는 감성으로 사는 차일까, 이성으로 사는 차일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필자는 대다수 MPV를 좋아하지 않았다. 둔감한 핸들링, 좁은 조타각, 출렁거리는 서스펜션, 지나치게 큰 몸집 등 취향과 반대되는 요소가 너무 많았다. 물론 머리로는 납득했다. 11명까지 탈 수 있도록 만들고 세팅한 자동차에 홀로 타고 있으니 거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당연하다고.   

하지만 마음까지는 설득하지 못했다. 요즘은 다음 차로 MPV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 주변 환경이 바뀌어서다. 일과 출장이 늘었다. 비는 시간엔 차에서 쪽잠을 자거나 일을 해야 한다. 학부모가 된 친구들의 미니밴 자랑도 팔랑귀를 흔들었다. ‘취미 생활에도 쓸 수 있는 7인승 국산 미니밴을 사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해도 작고 날쌘 차를 사랑하며 꿈꿨던 필자건만 이젠 실내공간을 제일의 가치로 삼아야 한다니…  

스포츠카를 포기하고 MPV를 사기로 마음먹으니 보상심리가 커졌다. 즐거움을 포기하는 대신, 특별한 차를 골라 보상받고 싶었달까. 마침 필자의 눈에 이상한 차가 들어왔다. 

미국 발견 500주년이란 주제에 맞춰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가 디자인한 7인승 MPV, 콜럼버스(Columbus)다. 1992년 이탈디자인(Italdesign)이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 내놓은 이 차의 디자인 콘셉트는 ‘대지를 달리는 항해선’이다. 그래서 배를 연상시키는 디자인 요소가 많다. 이름도 1492년에 미 대륙을 발견한 항해사이자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서 따온 것이니.   

요트나 항해선의 조종석이 높은 곳에 자리하는 것처럼 콜럼버스 또한 운전석이 높게 자리했다. 여기에 유선형 디자인을 더해 ‘항해선’의 이미지를 덧씌웠다. 부드럽게 휘어지는 지붕선 또한 콜럼버스의 디자인에 힘을 보탠다. 이탈디자인은 당시 자료에서 “운전석의 위치를 높여 운전자의 시야를 넓히는 효과를 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엔진의 위치에 있지 않을까 싶다. 이탈디자인은 BMW 1세대 8시리즈의 최고출력 300마력짜리 V12 5.0L 엔진을 가져와 차체 가운데에 달았다. 따라서 엔진 높이에 맞춰 차 앞부분 바닥을 높였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변속기는 5단 수동이다. 계기판, 에어컨 등 여러 버튼과 조작부는 BMW 8시리즈에서 상당수를 가져왔다.  

 

콜럼버스의 실내는 앞부분과 뒷부분으로 구분된다. 앞은 운전에 초점을 맞춘 곳으로 중앙에 운전석을 두고, 양쪽에 좌석을 달았다. 맥라렌 F1과 같은 방식이라면 과장일까? 운전석 의자는 360도 회전이 가능해 차를 세운 뒤에는 양쪽 승객과 담소를 나눌 수 있도록 했다. 운전석이 높아 뒤를 제대로 볼 수 없으니 카메라와 모니터를 달아 뒤를 살피도록 했다.   

높이를 낮춘 뒤편의 공간엔 좌석 4개를 달았다. 좌석은 크기가 크고 쿠션이 넉넉해 응접실에서 가져왔다고 해도 믿길 정도다. 뒤에 앉아 앞을 볼 수 없다는 약점은 모니터로 해결했다. 모니터로 TV프로그램을 보거나, 비디오테이프 플레이어와 연결해 여행 중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했다. 요즘 나왔으면 유투브를 볼 수 있었겠지만. 

공간 활용을 위한 아이디어도 담았다. 이탈디자인의 자료에 따르면 2개의 시트를 더 달수도 있고 모든 시트를 뗄 수도 있다.   

개방감을 확보하기 위해 앞좌석에는 선루프를, 뒷좌석에는 파노라마 루프를 달았다. 럭셔리 요트의 것처럼 앞으로 뻗어나간 창문은 큼지막해 빛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구성이다. 

지붕 양쪽에는 당시 최첨단 기술로 손꼽히던 광섬유를 이용해 빛을 비추도록 했다. 호화로운 디자인과 구성이 인상적이다. 넉넉한 공간의 다양한 활용 방안을 떠올리는 이유다.  

실제로 이탈디자인은 콜럼버스의 뒷칸을 개조한 이동형 사무실, 스쿨버스, 픽업트럭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이탈디자인은 콜럼버스에 대해 “미국의 현대적인 생활에 어울릴, 최고 수준의 이상적인 7인승 MPV를 만들었다”고 평했다.  

최고를 위해 노력한 부분은 제작 기술에서도 일부 엿볼 수 있다. 프레임은 철제로 제작했지만, 무게를 줄이기 위해 차체에는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CFRP)을 사용했으며, 다양한 노면에 대응할 네바퀴굴림(4WD) 구동계를 달았고, 긴 차체 때문에 회전반경이 늘어날 것을 반영해 저속에서는 뒷바퀴의 각도를 15도 꺾는 리어 스티어링 기술까지 담았다.  

아쉽게도 콜럼버스의 크기 등 상세 제원은 남아있지 않다. 당시 자료에 따르면 길이가 6m쯤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메르세데스-벤츠 스프린터의 5926㎜를 앞선다. 이토록 큰 공간을 단 7명만 쓰는 여유로움이 주는 맛은 각별할 것이다.   

하지만 시대를 너무 앞선 것일까. 너무 크고, 너무 화려했던 콜럼버스는 당연히(?) 양산의 길로 가지 못했다. 만일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최상의 수준을 자랑하는 7인승 MPV를 목표로 했으니 가격도 그만한 수준으로 불렀을 것은 뻔하다. 똑똑한 소비를 강조하는 지금 시대에는 분명 어울리지 않는 차이긴 하다. 

그럼에도 필자는 콜럼버스 같이 특이한 MPV가 있었으면 한다. MPV는 가정을 위한 가장의 선택으로 불리니 알뜰히 경제성을 따져 고르는 사람이 대다수인 것은 알지만, 마음으로 고를 수 있는 MPV가 있기를 희망한다. 주판알 튕기며 평균만 맞춘 차에는 개성이 없다. 기본기는 지키되 특기를 더해야 한다. 디자인, 고급스러움, 크기, 운전의 즐거움 등 여러 가치 중 한 가지만 날을 뾰족하게 세워도 그 가치에 공감하는 열광적인 팬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 안민희 드라이브 스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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